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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의 옛날 이야기 ⑩ 율곡습지의 옛날 모습들과 기억

입력 : 2016-05-26 12: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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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곡습지의 옛날 모습들과 기억

 

 

1967년 지금의 율곡리 방앗간앞 버스 정류장. 뒷산에서 보이는 율곡습지

 

파주시에서 가장 넓고 예쁘게 꾸며진 공원중 한 곳이 파평면 율곡리에 있는 율곡습지 공원이다. 봄과 가을에 축제가 벌어지는 명소가 된 이곳의 마을에서 태어나 자랐고 고향마을의 역사를 연구하다보니 이곳을 더 의미있게 기억하는 사람 중 하나가 되었다.


율곡습지는 메내개울이라고 불렀는데 왜구를 무찌른 멸왜천에서 유래하였다. 왜란당시 임진강을 건넌 선조와 군사들이 강을 두고 대치하면서 유극량 등 몇몇의 장군들이 군사를 이끌고 강을 건너 왜구를 기습하기도 하였다. 1987년 7월 일본 산업능률대학 이사장인 우에노이치로는 자신의 10대 선조인 우에노가 임진왜란에 참전했다가 1592년 5월 12일 임진강변에서 매복한 조선군사의 습격을 받아 죽은 기록을 찾아 율곡습지를 찾아왔다. 이때 율곡습지 옆산에서 왜군의 시체를 모아 묻은 만무덤 등을 확인하고 돌아갔다. 설화로만 전해지는 것이 아니라 실제 왜구를 무찔렀고 우리 쪽의 기록뿐만 아니라 일본 측의 후손도 확인한 유서깊은 곳이다.

 

습지옆의 율곡소공원 부근에는 아주 오래전 옛날, 겨울에 임진강의 얼음을 잘라서 보관하던 곳이 있었다. 그래서 이곳을 마을 이름을 빙곡동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80년대까지 율곡습지 입구에는 방앗간이 있었서 버스정류장이름이 방앗간 앞이었다.

 

중앙에는 큰 밤나무들이 공원의 멋진 풍경을 더해주고 있는데 이 밤나무의 처음 모습을 기억한다. 1973년 4월의 토요일쯤 학교가 끝나 율곡습지의 강가 길로 가는 중에 밤나무 묘목을 넓은 밭에 심어놓은 것을 보았는데 이날 심은 밤나무 중 남아 있는 것이 율곡습지 공연무대앞에 크고 높게 자란 밤나무들이다.

 

이곳은 옛날부터 늪과 풀과 홍수로 쌓인 황토들로 이루어진 곳이다. 율곡습지공원 중앙에 옛날식으로 복원해놓은 작은 초가집 뒤 30미터 부근에는 지금까지 보았던 황토중에 가장 질좋고 붉은 황토가 퇴적된 작은 구릉이 있었다. 학교를 오갈 때 흙장난을 하던 곳이었는데 70년대까지 율곡리부근에서 집을 지을 때 이곳의 활토를 퍼가서 쓰곤 했다. 지금은 모두 사라졌다.

 

생각해보면 아쉬운 유물들이 있었다. 율곡습지 양수장이 있는 곳에서 멀리 강변옆의 카페가 있는 강가 절벽옆에는 1970년대까지 조개무덤이 아주 많았다. 훗날 고향마을의 역사를 연구하면서 이것이 오래전 신석기나 청동기시대 거주했던 사람들의 귀중한 유적일수가 있어 다시 가서 찾아보니 군사용 강변철책을 만들고 둑을 쌓느라 모두 사라져 버렸다.

 

▲1968년 율곡2리 마을 뒷산인 지금의 도토리 둘레길에서 보이는 율곡습지

 

율곡습지는 선현들의 발자취가 남아 있는 곳이기도 하다. 화석정 마을에 살던 율곡이이와 두포리에 살던 우계 성혼은 평생을 학문과 우정을 교류하였고 지금도 여러 가지 일화가 전해진다. 두 사람은 서로를 만나기 위해 지금의 율곡습지 가운데와 강쪽의 길을 가로 질러 다녔다. 그들이 다닌 율곡습지의 길은 1919년 일제강점기의 파주 지도에 수백년동안 내려오던 길의 표식이 있으며 1990년대 초반까지 습지와 강가의 길이 남아 있었다. 율곡은 43세 때 소를 타고 우계를 찾아가며 시를 남겼는데 이곳의 모습을 연상할 수 있는 구절이 있다.

 

해가 저물어 눈이 산에 가득한데

들길은 가늘게 교목 숲 사이로 갈렸구나

소 타고 어깨 들썩이며 어디를 가나

우계 물굽이에 미인을 그리워했다네

 

율곡습지 부근의 산중턱은 가난했던 70년대까지 율곡리마을의 아픈 가족사를 담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50~70년대까지 거의 모든 이 부근 마을의 어린아이들은 한집에 1명이상은 병이나 사고로 죽었다. 율곡습지옆의 옆산이나 건너편의 산아래 황새모티라 불리던 곳에는 이렇게 죽은 아이들을 묘를 쓰지 않고 묻은 곳이다. 학교끝나고 오다 두포리 장계다리 밑에서 멱감다 죽은 큰누이, 병들어 9살에 죽은 작은 누이를 묻은곳이고 제사준비하던 어머니등에 엎힌채 죽은 아랫집 친구 효용의 형을 묻은 곳이고 병들어 고향가고 싶다고 울다가 죽은 양색시가 묻힌곳이기도 하다.

 

▲1967년 율곡습지와 37번 국도, 큰 장마때는 산밑에 까지 물이 찼다.

 

그리고 율곡습지 부근에는 이제는 보기 힘든, 하지만 다시 언젠가 다시 볼지도 모르는 장관이 있는 곳이다.

 

하나는 물난리로 유명한 도시 파주에서 해마다 여름이면 단 한번도 빠지지 않고 물에 잠겨 바다처럼 되는 곳이 바로 율곡습지였다. 큰 장마가 온 해에는 율곡습지 옆산에서 보면 멀리 장파기까지 큰 바다처럼 변했다.

 

또한 엄청난 장관이었으나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임진강 유빙을 볼수 있는 곳이다. 봄날의 어느날 딱 하루에 겨우내 얼었던 두꺼운 얼음들이 서해의 밀물에 강물 밑에서 금이 가면서 깨진다. 그 때 용이 울부짖는 소리가 나고 이렇게 깨진 얼음들이 반나절 후에는 천지를 울리며 뒤집히고 부딪치면서 무섭게 떠내려가는 장관을 가장 자세하게 볼 수 있는 곳이다. 

 

 

 

파주시 파평면 율곡3리 사람 김현국

 

 

 

#4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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